한국의 전통주 중에서도 지리적 표시 단체 표장을 최초로 등록한 ‘한산소곡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한산소곡주’의 기원과 역사, 제조 방법, 그리고 특징과 즐기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한산소곡주’의 기원과 역사
‘한산소곡주’의 이름의 유래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흴 소(素)에 누룩 곡(麯)을 써서 소곡주(素麯酒)라 표기하기도 하고, 작을 소(小)를 써서 소곡주(小麯酒)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흰옷을 입고 정갈한 마음으로 술을 담가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과 흰 술이 맑은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청주를 의미한다고 보는 주장 혹은 흰 누룩 / 작은 덩어리 누룩으로 담근 술이라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한산소곡주’가 등장하는 최초 기록인 삼국사기에서 백제본기 다루왕 11년 백성들에게 소곡주를 빚는 것을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고, 의자왕 16년(656)에는 "임금이 궁녀들을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져 소곡주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라고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백제가 망한 후 유민들이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빚어 마셨다는 설도 있는 것으로 보아 ‘한산소곡주’는 백제 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따라서 무려 1500년이 넘는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전통주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고려시대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규합총서(閨閤叢書)』, 『음식디미방』과 같은 많은 문헌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이르러 술 빚는 방법이 체계를 갖추고 민간에 알려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양곡관리법에 의해 전통주 제조가 중단되었을 때도 한산면에서는 집집마다 소곡주를 몰래 빚어왔었습니다. 소곡주의 명인으로 지정된 우희열 명인도 처음 시집을 왔을 당시 정부에서 진행하는 밀주 단속으로 인해 공식적인 제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시어머니(고 김영신 명인)가 한산소곡주를 몰래 제조하고 있었고 자신도 시어머니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이후 전통주에 대한 제한이 풀리며 국가가 한산소곡주를 충청도의 지역 특산물로 지원하였고 서천군 한산면에서 만드는 소곡주만 '한산소곡주'라는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서천군 한산면에 존재하는 70여개의 양조장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서로 다른 제조법의 가양주까지 합치면 같은 ‘한산소곡주’여도 수십 가지의 레시피의 술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한산소곡주’ 제조 방법
양조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곡주 명인인 우희열 명인이 빚는 방식은 멥쌀로 만든 백설기 떡에 누룩 즙을 넣어 밑술 만드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4~5일 발효시킨 밑술에 찹쌀을 넣고 들국화, 메주콩, 엿기름 등 첨가물을 더한 뒤 마지막으로 홍고추를 몇 개 꼽습니다. 고추는 맛보다는 부정 타지 말고 술이 잘 익으라는, 아기 태어난 집에 거는 금줄과 비슷한 주술적 의미입니다. 100일을 발효·숙성시킨 항아리에 대나무로 짠 용수를 박은 뒤 바가지로 술을 떠냅니다. 소곡주는 대부분 맵쌀이 아닌 찹쌀로 빚는데 찹쌀 함량이 높을수록 단맛이 강해집니다. 거기에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물은 일반적인 청주를 빚을 때 사용하는 물의 반 정도만 사용하여 더욱 단맛이 강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산소곡주’ 특징과 즐기는 방법
소곡주에는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별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술을 빚던 며느리가 술이 잘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젓가락으로 찍어 먹는데, 그 맛이 좋아서 계속 먹다가 취해서 일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나,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에서 쉬다가 술맛에 눌러앉아서 과거 시험장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남의 집에 숨어든 도둑이 소곡주를 거푸 마시다 그만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소곡주가 너무 맛있어서 계속 마시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새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취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술이 센 사람이라도 처음 마시는 사람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술입니다.
‘한산소곡주’는 생주와 살균주 두 가지 형태로 유통되는데, 두 가지의 맛이 상이하므로 둘다 맛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살균된 소곡주는 달고 끈적한 맛이 강조되며, 곡물 향이 강한 편이나, 생주는 단맛 외에도 상큼한 맛과 누룩에서 오는 과실 향, 꽃 향 등이 조화를 이루어 복합적이고 보다 균형 잡힌 향미를 가집니다. 생주는 냉장 유통 및 냉장 보관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보통 서천군 외 지역의 마트에 있는 것은 대부분 살균주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으로 다양한 한산소곡주의 생주 상품을 구할 수 있으며, 주문 시 아이스팩과 함께 냉장 상태로 배송되기에 생주를 구하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소곡주는 보통 도수가 주로 시판되는 희석식 소주와 비슷하나 특유의 단맛과 향이 알코올의 쓴맛을 가려주고 구수한 뒷맛이 오히려 다시 술을 부릅니다. 소곡주는 보통 5~10도의 시원한 온도에서 맛과 향이 제일 좋으나 겨울에는 소곡주를 중탕해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는 방식도 추천해드립니다.
소곡주의 경우 특유의 맛과 향으로 안주가 없어도 마실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식 안주와 잘 어울리는 편이지만 달콤한 과자류와는 잘 맞지 않는 편입니다.
마치며
다른 전통주에 비해 저렴한 편이지만 맛과 향은 전혀 뒤처지지 않는 전통주로 입문하기에는 좋은 술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우희열 명인의 소곡주이지만 그 외에도 소곡주를 만드는 양조장은 많으며 각각의 양조장마다 전통적인 비법과 레시피가 조금씩 달라서 술맛이 제각기 다르니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소곡주를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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